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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여행 3(카파도키아, 얼음 길의 콘야)

이종선 2012. 2. 6. 19:42

(카파도키야/콘야)

 

카파도키아는 터키 중동부에 있는 고원지대로 원래는 고대 국가의 이름이다.
약 200만년 전 에르지예스산과 하산산의 화산 폭발후, 물과 바람의 풍화작용에 의해서

지반의 단단한 부분은 남고 부드러운 부분이 깎여 나가

독특한 암석 기둥을 이룬 특이한 지형이다.

 

현무암(용암)과 응회암(화산재가 퇴적더어 생김)의 풍화 속도가 서로 달라 생긴

암석 기둥들을 이곳에선 '요정의 굴뚝(fairy chimney)'이라고 표현한다고...

 

카파도키아 지방 관광의 세가지 포인트는 다음 세가지이다.

1)특이한 모습의 자연 경관을 지닌 계곡들.

2)바위 동굴 교회.

3)세계 8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지하도시.

 

 

(건너편 절벽의 동굴)

 

아침에 일어나 식당으로 가니 일기가 불순하여 열기구 관광이 취소 되었다고 하는데..

 

(식당 창밖의 구상나무)

 

식사를 하다 창밖을 보니 풍선 몇개가 떠 오르고 있다.

 

 

 

 

 식당 밖으로 나가 파노라마 한바퀴 돌려본다.

 

(누르면 확대됨)

 

 

(안개가 벗겨지는 장미 계곡쪽 고원지대)

 

식사를 끝내고 호텔 밖으로 나와 전망을 감상한다.

 

(우측 호텔 뒤로)(누르면 확대됨)

( 아르지예스 산 3916m이 보인다.)

 

(식당 테라스에선 아내가 고양이와 놀고 있다.)

 

(암흑의 교회 그림)

 

카파도키아에서 처음 구경 거리로

어제 밤 추억거리를 만들며 다녀 왔던 우치사르 계곡 입구로 간다.

버스를 타고 5분 거리이다.

 

(우치사르①)(누르면 확대됨)

(우치사르②)(누르면 확대됨)

 

 

 

(거대한 바위를 자연 그대로 깍아만든 우치사르 요새)

 

우치사르는 뾰족한 성이란 뜻인데 중앙에는 높고 커다란 우치사르 요새가 있다.

또한 비둘기가 많아 살아 비둘기 계곡으로 알려진 곳인데

옛부터 비둘기의 배설물을 모아서 포도나무밭의 비료로 사용해왔다 하며

기독교에서  성령의 상징인 비둘기의 알은 동굴교회의 프레스코화의  염료로도 사용되었다.

 

비잔틴 군대가 주둔하기도 하였고 망루로도 사용 되었던 우치사르 요새에 올라가면

괴레메 계곡전체가 잘 내려다 보인다 하나 단체 관광이  트래킹은 어림 없다.

증명 사진 찍고 출발, 괴레메 야외 박물 관으로.

 

 

 

마름모 꼴 고원의 측면은 햇볕이 들면 빨간색으로 물든다 하여

장미 계곡으로 불리운다.

(버스 타고 씽씽  달려)

(괴레메 마을을 지나)

 

(괴뢰메 야외 박물관으로..)

 

괴레메 야외 박물관은 카파도키아의 상징인 동굴 교회 밀집 지역에

울타리를 쳐서 박물관으로 만든 것이다.

참고로 카파도키아 지방에는 동굴 교회가 400여개 있다고 한다.

 

선사시대부터 이곳에 사람들이 응회암을 파고 동굴을 만들어 생활했는데

응회함은 딱딱하지가 않아 파들어가기 쉽고 또한 공기와 접촉하면 단단해지는 성질이 있어

창문이나 굴뚝을 내어도 무너지지 않는다고 한다.

 

카파도키아 지방은 기원전 17년 로마의 직접 지배 하에 들어갔는데  

 그후 로마의 박해를 피해 기독교들이 이곳을 찾아 왔고

(괴레메란 '당신들은 볼수 없다'는 의미라고 함)  

313년 기독교가 공인된 다음에는 도피가 아닌 수도생활을 위해 거주하면서

교회의 내부를 예수의 일대기를 형상화한 성상화(Icon)로 장식했다고한다.

726년 레오3세부터 시작된  성상화 파괴 시기에 성상화 일부가 파괴 되었으나

843년 황후 테오도라에 의해 성상화 숭배 금지가 해제됨에 따라 복구되었고 

그후로 새로운 교회가 많이 생겨났는데 

1073년 셀주크 터키의  침공 이후에도 교회 건축은 13세기까지 지속되었다 한다.

 

(야외 박물관은 화장실도 동굴 형태이다.)

 

입구를 들어가면 왼쪽에는 수녀원(수도원) 건물이 있고

우측 바위 구멍이 엘말르 교회(사과교회) 가는길이다.

 

 

구멍을 통과하면 절벽위 엘말르 교회 입구가 나온다.

 

(사진 촬영 금지 팻말이 있다.)

 

천장 중앙엔 삼위일체를 뜻하는 손가락 모양의 예수님이 있고

그사면에 4대 복음 사가의 그림이 있다.

예수님 그림 뒤에는  천사 가브리엘의 성화가 그려져 있는데

왼손에 들고 있는 공 모양의 십자가가 그려진 것이 사과같다고 해서

사과(엘마리)교회라는 이름이 붙여 졋다고 한다.

 

(천사 가브리엘의 그림,얼굴에 불빛이 있는 그림 위에 있다.)

 

본능적으로 사진을 찍는데 설명하던 가이드가 제지를 한다.

 

프레스코화를 보존하기 위하여 사진촬영을  금지한다하지만

그림에 랜턴을 비춰 가며 설명을 하는(윗 사진) 가이드는 그냥두고 

flash 없이 찍는 사진을 금지하는 것은 솔직히 이해할수가  없었다.

 

참고로 프레스코화란에

벽에 석회를 바른 후  석회가 마르기 전에 안료를 그위에 칠하여

물감이 석회 벽 속으로 침투하도록 한 그림이다.

(프레스코라는 뜻은 이탈리아이로 신선하다는 뜻, 안료는 주로 천연 물감을 사용.)

 

아무튼 여행기를 작성하다 인터넷에서 6년전의 엘마리 교회 사진을 발견했는데

아래쪽 가브리엘 천사 부근을 비교해보니 

그간 손상이 많이 되었음을 알수 있어 가슴이 아프다.

 

(6년전 사진,이형숙의 주부 여행기서 인용)

 

그다음엔 바라바 교회가 나온다.

 

 

특이 하게도 붉은 밤색으로 기하학적 상징 문양이 그려져 있다.

그림 내용은 다 비슷하다고..

 

(역사의 요람 카파도키아-omer demir저 에서 인용)

 

(천연 안료를 제공했다는 교회 앞 나무들..)

 

일란리(뱀) 교회는 입구를 철골 구조물로 지지해놨다.

 

 

안에 들어가니  원형 돔 구조 없이 반원통형으로 되었는데

교회안에 무덤 자리가 하나 있다.

현지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교회 안에 묘자리로 만들어

부유한 사람들의 묘지로 쓰고  그들이 희사하는 돈으로 이 교회를 관리하였다고..

 

 

둥그런 천정에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한쪽엔 수염난 여인 그림이,

반대쪽엔 말 탄 기사 그림이 보인다.

 

(이형숙의 주부 여행기서 인용)

 

왼쪽 백발에 턱수염이 길게 난 사람은 이집트 여인 오노프리스이다. 

방탕한 생활을 하던중 남자들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자신을 구원해달라 기도하였는데

하느님이 응답하여 얼굴을 남자의 모습으로 만들었다 한다.(음부는 가렸다.)

우측은 성토마스와 성바질.

 

아래 그림은  성조오지와 성 테오도어가 사탄인 뱀과 싸우는 모습이다.

교회이름은 이그림에서 유래한다.

 

(역사의 요람 카파도키아-omer demir저 에서 인용)

 

그다음 안내판은 '식품저장고/주방/휴계실' 이란 제목인데

40~50 명이 거주하던 곳으로 식품 창고,부엌,휴게실이 나란히  붙어 있다고 쓰여 있다,

 

 

(식품 저장고) 

(부엌,벌집 모양의 화덕이 Tandir 형 오븐이다)

(휴계실,긴의자 우측엔 포도를 으깨던 와이너리가 있다.)

 

(2층서 본 내려다본 야외 박물관)

 

2층으로 올라가면 다시 거주 공간이 나오고

 

 

 밖으로 나와 계단을 올라가면 3층 예배당이다.

유일하게 사진 촬영 금지 팻말이 없다.

 

 

(환기 구멍)

 

 

 

수도회 건물 밖으로 나오니 바로 옆엔 암흑 교회가 있다.

 

(암흑의 교회 입구)

 

외부의 햇빛이 차단되어

프레스코화의 색감이 바래지 않고 그대로 보존 되어 있다는데 

박물관안의 박물관으로 입장료를 따로 밭는다.

어차피 사진도 못찍을테니 그냥 패스.. 

 

(돌아나오며 본 수도원 건물)

 

(입구 쪽의 수녀원/수도원 건물-출입금지이다.)

 

박물관을 나와서 주차장쪽으로 걸어가는데  길 왼편에 토칼리 교회 문이 보인다.

교회 문 주변은 붕괴를 우려해 최근에 보수한듯 축대가 쌓여 있다.

입구에서 티켓을 요구해 유로인줄 알았으나 괴레메 박물관 입장권을 보여주면들어갈수 있다.

 

(토칼리 교회 입구)

 

토칼리 교회는 10세기 초엽부터 만들어진 오래된 교회로

가장 작은 옛교회,옛교회 밑의 교회,옛교회 북쪽의 예배당, 그리고 새로지은 교회등

네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무 데크위로 걸어가며 구경하게 해놨는데  

어두운 청색 톤으로 그려진 성상화 역시 사진 촬영 금지이다.

 

(역사의 요람 카파도키아-omer demir저 에서 인용)

(발아래 지하교회엔 성상화가 없다.)

 

 

(돌아다본 토칼리 교회)

(주차장서 돌아다 본 괴레메 야외 박물관)

 

(눈 덮인 장미 계곡을 보며 파샤바 계곡으로  이동..)

 

 

파샤바란 '수도사의 골짜기'란 뜻이라는데

시리아 수도사 시몬이 머리가 셋인 버섯바위를 보고 삼위일체 영감을 밭아

 처음 수도생활을 시작하였으며,

벨기에 작가 폐요가 여길 여행하다 스머프 만화를 구상했다고도 한다.

 

 

 

단체 관광에 알맞게 시몬 교회를 한번 보고는

이리저리  휘-ㄱ 돌아보다가...주차장으로.

 

 

 

(뒷편에는 토끼 모양의 버섯바위가..)

 

 

(바위 언덕에 올라가니 말리 산이 보인다.-아르지예스 산?)

 

 

 

 

(가운데 바위는 일년에 한번씩 안전 진단을 밭는다고..)

 

 

주차장에서 터키 가이드에게 바위 언덕에서 본 산이름을 물어보니

주저하지 않고 아르지예스 산이라 하는데..여행후 지도를 구하여 보니 방향이 다르다.

(단체 관광은 한국 인솔자,현지 한국인 가이드,터키인 가이드 셋이 안내한다.)

 

(데브란트 계곡 가는중 비가 다시 내린다.)

 

(데브란트 계곡)(누르면 확대됨)

 

 데브란트 라는 뜻은 '상상의 계곡'이란 뜻이고

낙타바위가 유명하여 낙타바위 계곡으로 불리기도하는데

현지 가이드는 미어캣 바위계곡이 더 어울릴 것 같다고 말한다.

상상은 자유이니까..

 

(이것이 그 유명한 낙타바위)

(키스하는 바위)

(나플레옹 모자 바위)

(새끼 낙타바위)

 

(터키 가이드와 탕갈견 잡종)

 

단체 관광에서 족보는 필수이다.

쪽집게 가이드가 찍어 주는 바위를 배경으로 착착착 증명사진을 재빨리  박고,

터키석 쇼핑하러 출발..쇼핑은 반대로 아주 느긋하게 진행된다.

 

 

터키석은 원산지가 시나이 반도라고한다.

오스만 제국 시절 귀족부인들이 즐겨 사용했다하여 터키석이라 하였다고..

매장 안이 답답하여 밖으로 나오니 옆에는 세라믹 공장이 있다.

 

(이곳 구경이 더 실속있을 듯 한데..)

 

점심은 항아리 케밥을 먹으러 동굴 식당으로 간다.

 

 

식당 내부는 어제 벨리 댄스 관람하였던 아바노스의 식당과 같은 구조이다.

 

(중앙 홀에선 전통악기인 '카푼'연주를 하고 있고)

(일행중 한분이 쏘신 포도주)

(드디어 등장한 항아리와 익살스러운 사장님)

 

잘게 썰은 고기와 더불어 양파, 마늘, 가지, 감자 등을 넣고 항아리를 밀봉한 후

섭씨 80도의 불에 3시간 동안 구워 만드는 항아리 케밥은 

전통식이 아니라 동양인에 맞추에 개발된 퓨전 케밥인데

같이 먹는 '마까마'란 빨간 소스도 입에 잘 맞았다.

 

 

점심후 데린구유 지하도시로 이동하는 중간에 우측 산위에 돌기둥 같은 구조물이 보인다.

 혹 유적인가하여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네브쉐히르 도시서 만든 조각공원이라고 한다.

 

(산에 그려진 동물 역시 네브쉐히르 도시의 상징이라고) 

 

(데린구유 입구 옆 교회-십자가가 보이니 모스코는 아닌듯)

 

카파도키아 지역은 지반 자체가 화산재가 퇴적되어 이루어진 응회암이기 때문에

지하 도시 조성에 적합하여 이 근처 직경 60km내에 36개 지하도시가 있다고 한다.

 

다른 지하도시와 마찬가지로 데린구유는 기원전 히타이트 시대부터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로마와 비잔틴 시대를 거치며 지속적으로 확장되었다.  

즉, 지하 1층은 원시 히타이트 인들이 살았고 이후에 다른 종족들이 와서 살면서

지하 8층까지 확장하게 되었다. 

지하에 도시를 만든 이유는 이민족의 침입이나 종교상의 박해를 피하기 위해서라고 추측하는데 

대표적인 예가 로마와 이슬람의 박해를 피해  숨었던 기독교도들이다.

 

 데린쿠유는 '깊은 우물'이란 뜻인데 지하도시의 가장 깊은 곳에는 우물의 물을

지상에서 끌어올려 사용할 수 있어서 나온 이름이라 한다.

깊이 85m  지하 8층,한꺼번에 5000명정도 살수 있다고  추정 되는데 

1960년도 우연히 발견 되었고  1965년 일반에게 개방되었다.

 

 

옷을 단단히 입으라는 가이드의 말을 무시하고  겉옷 없이

버스를 내려 입구로 뛰어간다.  지하인데 추워야 얼마나 추울까?

 

(지하도시 입구)

 

그런데 막상 지하에 들어가니 바람만 없다 뿐이지 체감 온도는 지상과 비슷하다.
환기구가 많고 환기가 잘되어 그렇다고..

 

(식당)

 

입구를 지나 내려가면 바로 큰 주거 공간이 나오는데 식당이라한다.
식당이 입구에 가까운 걸로 보아 거주자들이 주로 지낸 곳은 지하가 아니라 지상이었다고 추정하며
은둔 생활도 아마도 로마의 암묵적인 묵인하에 이루어졌을거라 한다.

 

 

지하도시에는 미로 처럼 수많은 통로가 있다.
외부 침입을 막기위한 돌문(밖에선 열기 어렵다)을 지나가면 침실이 나오고

 

(침실)

 

(환기구, 탈출을 위한 계단이 보인다.)

 

도처에 지상으로 뚤린 환기구가 있다. 환기구는 환기외에

물건 이동로, 음성 전달 통로로도 사용하였고 유사시엔 탈출로로도 사용되었다

 

(또 나오는 돌문)

(좁은 통로와 계단)

 

(십자가형으로 파인 교회)

 

돌문 3개 지나내려가면 교회가 나온다.
사각형이였던 기독교 초기 교회와는 달리 십자가형으로 교회가 만들어졌는데
십자가가 기독교 상징이 된 650년 이후 만들어 진것으로 보인다고...

따라서 지하 도시는 로마의 초창기 기독교 박해때에도 사용되었지만
그이후 이슬람을 피해서도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더 내려가면 우물과 무덤이 나온다.
공기 주입구가 무덤까지 연결되는 걸로 보아 무덤이 아니라 
시신을 일시로 보관하던 장소 아닐까 추정.

 

(우물)

 

(무덤)

 

무덤에서 위로 올라가면 교회옆 만남의 장소가 나온다.
기둥에 구멍이 양쪽에 있는 걸로 보아 체형을 집행하던 걸로 추정 되고
그옆에는 감옥이 보인다.

 

(만남의 장소 기둥 양쪽엔 밧줄 거는 구멍이 있다.)

(감옥)

 

거실 지나가면 마굿간이 나오고 그 다음은 지상이다.
변소가 안보이는데 배설물은 아마 변기에 담았다가
아침 예배후 지상으로 나와 처리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거실)

(마굿간)

(가축 묶어 두는곳과 여물통)

(출구)

 

이렇게 카파도키아를 대충 둘러보고 콘야로 이동한다.


'양의 가슴'이란  뜻의 콘야는 관광이 아니고 하룻밤 쉬어 가는 도시인데
안턀라까지는 토루스 산맥을 넘어 차로 10시간 가야하기 때문이다.

 

콘야는 아나톨이아 고원 중앙에 있으며 터키 10대 도시중의 하나로
광활한 평야에서는 터키 국민의 중요 곡식인 밀을 생산한다.
사도 바울이 기독교을 전도할 때 머물렀던 곳이고(성경엔 옛이름인 '이고니온'으로 나옴)
1134년 롬 셀주크의 술탄이 수도를 니케아에서 이곳으로 옮긴 후 크게 발전한 도시이다.

 

 

콘야로 가는 길 중간에  카라반 사라이가 있는 휴계소에 들렸는데
시간이 늦어 사라이의 문은 잠겨 있었다.


카랴반 사라이란 실크로드 다니던 대상들의 숙소로
안에는 상인들을 위한 기도소와 목욕탕,말과 낙타를 위한 우리등이 있다.

 

(카라반 사라이)

 

또한 콘야는 13세기에 시작된 이슬람 신비주의인 메블라나 교단의 발상지인데
쿠란을 몰라도 신의 뜻을 알수 있게 한다는 세마 춤은 메블라나가 만들었다.
 
흰색의 저고리와 치마는 수의, 검은 망토는 무덤, 갈색이나 흰색 모자는 묘비를 상징하는데
춤이 시작되면 무덤에서 나온다는 의미로 검은 망토를 벗고 고개를 살짝 오른쪽으로 숙인 다음
오른손은 위로(신) 왼손은 아래로(사람) 뻗어 왼발을 축으로  몸을 회전시키며 추는 춤인데
신과 사람의 만남을 상징한다고 한다.

 

(코냐 데데만 호텔, 회전문의 세마춤 그림)

 

 

호텔에 도착하여 늦은 저녁으로 탄드로 케밥을 먹는데
이는 양고기를 쪄서 기름을 뺀 것으로 중부 콘야지방의 유명음식이다.
하지만 네시간 버스여행 끝이라 피곤하여 그런지 나만 빼고 다른 사람들은 음식을 남겼다.

 

(대형마트)

 

저녁후 호텔 건너편 대형마트로 맥주등 요깃거리를 사러 갔는데
그 넓은 식품 매장에 주류 파는 곳이 없다.
통통한 안내 아가씨에게 매장안의 술을 물어보니 'no'라하여
그럼 술 파는 다른 곳? 하니 단호하게 'no'라 하는데 어찌 표정이 묘하다.


마트를 나와 주변 아파트 상가를 찾아간다.

담배 냄새 지독한 가게안으로 들어가 찾아봐도 여전히 술은 없어
손짓 발짓으로 물어보니 큰길 따라 쭈욱 가라고 하는 듯 하다.

 

눈이 얼어 미끄러운 길로  20여분 걸어가니 제법 번화가가 나오지만
주류 판매점은 여전히 안보이길래 길 건너온 중년 남자에게 물어보나 말이 안통하고..
그렇게 멋적게 머뭇 거리는데..그 남자분이 핸폰으로 통화를 하고 
젊은 아들이 집에서 나온다.(바로 그 남자 집앞이였다).
아들에게 물어보니 데데만 호텔에서만 술을 구할수 있다고 알려준다.

 

그제서야 콘야가 종교적으로 보수적인 도시라고 한 가이드 말이 생각나면서
대형 마트 안내 아가씨의 고소해 하는듯한 표정이 이해가 되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은 여전히, 아니 더 미끄러운듯 느껴졌다. 

 

(넓지 않은 가게인데도 터키 이발소엔 남자 이발사가 서너명씩 같이 근무한다.
거리를 걸으면서 본 곳 두 군데 다 그랬는데 둘 다 손님 없이 테레비만 보고 있었다.)

 

터키여행 셋째날